[다큐멘터리 기록]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를 보고 예술과 이립을 고민하다

나는 드라마, 영화, 다큐 등의 영상 매체를 많이 소비하는 편이 아니다. 최근에서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먼터리를 몇 편 보고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서는 전달 받을 수 없는 감성과 지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큐를 보고자 Netflix 가입을 고민하던 차에 우리집도 SK 브로드밴드를 가입했다는 생각이 났다. SK에서 제공하는 다큐를 살펴 보다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바로 오늘 정리할 이세이 미야케편이다. 주제가 시각의 예술인 패션인 만큼, 책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성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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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내용 정리 1) 이세이 미야케 소개]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의 패션디자이너다. 그의 옷은 한 장의 천으로 만들어진다. 그 스타일은 ‘오리가미(종이접기)’스타일로 발전했다. 오리가미 스타일을 통해 한 장의 천이 평면에서는 조형미를 갖춘 하나의 종이 접기처럼 존재케 하고, 천을 들었을 때는 또 옷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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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가 되고 옷도 되는 그의 스타일

옷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이렇다. “대중이 옷을 봤을 때, ‘흥미와 재미’를 사람들이 느끼게 하자. 그리고 입었을 때 ‘착용감’이 편하게 하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가 중요히 생가하는 것은 머리와 손을 동시에 쓰는 것이다. 오리가미는 2차원의 그림으로 다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종이로 접어 구상하고, 그것을 옷으로 만들어 모델에게 입힌 뒤, 모델이 입은 상태에서 바로 바로 수정하는 것이다. 이세이 하야케는 손과 머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 방법이 일본의 정통이라고 말한다.

[내 감상 (1): 예술이란 대중의 선택이 아닌, 이상과의 부합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가]

옷을 통해 대중이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그는 오리가미 스타일을 통해 이뤄내고 있다. 목표는 성공이다. 흥미롭다. 다만 모두를 위한 옷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 다큐에서 이세이 하야케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5층 계단 형태의 원피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기준에서 가장 완벽한 옷일지 몰라도 대중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게 될 의상은 아닌 것 같다.

예술이라는 그런 것일까. 대중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는 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술가 자신이 세운 기준에 가장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 자신이 세운 완벽의 기준에 다가가는 것. 그렇다면, 그 옷의 가치는 ‘얼마면 고객이 살까?’가 아니라, ‘이 작품이 예술적 완벽성을 고려 했을 때, 얼마나 비싸게 팔아야 할까?’가 질문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순수예술작품과 상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회화도 조각도 다 상품이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술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화장실 벽에 걸려있는 그림과 각 가정 식탁 위에 있는 작품은 예술작품인가 상품인가?

작품과 상품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Mass-production의 여부인가? 우리는 심지어 가전제품도 그 디자인적 완성도에 따라서 예술품처럼 여기기도한다.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된 콜라병마저도 예술의 세계로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한 것이 팝아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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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Green Coca-Cola Bottles>, 1962

작품과 상품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고민해 놓은 것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다만 현시 점의 나의 기준은 ‘작가의 의지’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에 다가가도록 설정하고 기획하는 것. 어쩌면 대중의 선택까지 그 기준 중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상업예술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없이 순수히 자신의 만족만을 위한 작품이라면 순수예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 감상(2) 나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세이 미야키는 파리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자 했고, 그것이 한 장의 천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제약조건”이다. 남들이 혹은 아무도 걸지 않는 제약 조건을 자신의 작품 활동에 적용시킴으로써 그만의 스타일이 시작 됐다.

그 이후는 “전통”에서 배우는 것이다. 제약 조건 속에서도 그가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오랜 세월간 연구하고 쌓아 온 전통이라는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가미에서 한 장의 천으로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조형적 형태를 얻어왔다. 그리고 일본 전통 종이와 유도복 소재 등을 적용 했다. 전통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온 것이다.

올 해 30살이 되면서 향후 10년의 모토로서 이립(而立)을 택한 나로서는 재밌는 부분이었다. 또, 최근에 르 코르뷔지에 전을 다녀와 느낀 것도 바로 ‘사유’의 힘이다. 사람은 삶을 사유의 종합으로서 살아가고, 죽어서도 하나의 사유로서 남아야 한다. 그 사유라는 것은 결국 남들과 나만의 것(나만의 스타일)이어야 의미가 있다. 그것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특별히 가치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문제가 광범위하고 그 해결방안이 획기적인 나머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게 된다면 그 사유는 시대를 가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유의 힘. 이세이 미야케는 해답을 제약과 전통에서 찾았다. 다만 시대적 과대를 푸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제 블로그의 글은 ‘생각을 자극하고 기록하기 위해’ 작성 되었습니다. 글의 주제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 께서 보신다면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한 지적과 의견 제시는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