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기록]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를 보고 예술과 이립을 고민하다

나는 드라마, 영화, 다큐 등의 영상 매체를 많이 소비하는 편이 아니다. 최근에서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먼터리를 몇 편 보고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서는 전달 받을 수 없는 감성과 지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큐를 보고자 Netflix 가입을 고민하던 차에 우리집도 SK 브로드밴드를 가입했다는 생각이 났다. SK에서 제공하는 다큐를 살펴 보다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바로 오늘 정리할 이세이 미야케편이다. 주제가 시각의 예술인 패션인 만큼, 책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성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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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내용 정리 1) 이세이 미야케 소개]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의 패션디자이너다. 그의 옷은 한 장의 천으로 만들어진다. 그 스타일은 ‘오리가미(종이접기)’스타일로 발전했다. 오리가미 스타일을 통해 한 장의 천이 평면에서는 조형미를 갖춘 하나의 종이 접기처럼 존재케 하고, 천을 들었을 때는 또 옷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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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가 되고 옷도 되는 그의 스타일

옷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이렇다. “대중이 옷을 봤을 때, ‘흥미와 재미’를 사람들이 느끼게 하자. 그리고 입었을 때 ‘착용감’이 편하게 하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가 중요히 생가하는 것은 머리와 손을 동시에 쓰는 것이다. 오리가미는 2차원의 그림으로 다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종이로 접어 구상하고, 그것을 옷으로 만들어 모델에게 입힌 뒤, 모델이 입은 상태에서 바로 바로 수정하는 것이다. 이세이 하야케는 손과 머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 방법이 일본의 정통이라고 말한다.

[내 감상 (1): 예술이란 대중의 선택이 아닌, 이상과의 부합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가]

옷을 통해 대중이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그는 오리가미 스타일을 통해 이뤄내고 있다. 목표는 성공이다. 흥미롭다. 다만 모두를 위한 옷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 다큐에서 이세이 하야케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5층 계단 형태의 원피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기준에서 가장 완벽한 옷일지 몰라도 대중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게 될 의상은 아닌 것 같다.

예술이라는 그런 것일까. 대중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는 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술가 자신이 세운 기준에 가장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 자신이 세운 완벽의 기준에 다가가는 것. 그렇다면, 그 옷의 가치는 ‘얼마면 고객이 살까?’가 아니라, ‘이 작품이 예술적 완벽성을 고려 했을 때, 얼마나 비싸게 팔아야 할까?’가 질문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순수예술작품과 상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회화도 조각도 다 상품이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술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화장실 벽에 걸려있는 그림과 각 가정 식탁 위에 있는 작품은 예술작품인가 상품인가?

작품과 상품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Mass-production의 여부인가? 우리는 심지어 가전제품도 그 디자인적 완성도에 따라서 예술품처럼 여기기도한다.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된 콜라병마저도 예술의 세계로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한 것이 팝아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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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Green Coca-Cola Bottles>, 1962

작품과 상품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고민해 놓은 것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다만 현시 점의 나의 기준은 ‘작가의 의지’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에 다가가도록 설정하고 기획하는 것. 어쩌면 대중의 선택까지 그 기준 중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상업예술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없이 순수히 자신의 만족만을 위한 작품이라면 순수예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 감상(2) 나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세이 미야키는 파리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자 했고, 그것이 한 장의 천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제약조건”이다. 남들이 혹은 아무도 걸지 않는 제약 조건을 자신의 작품 활동에 적용시킴으로써 그만의 스타일이 시작 됐다.

그 이후는 “전통”에서 배우는 것이다. 제약 조건 속에서도 그가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오랜 세월간 연구하고 쌓아 온 전통이라는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가미에서 한 장의 천으로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조형적 형태를 얻어왔다. 그리고 일본 전통 종이와 유도복 소재 등을 적용 했다. 전통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온 것이다.

올 해 30살이 되면서 향후 10년의 모토로서 이립(而立)을 택한 나로서는 재밌는 부분이었다. 또, 최근에 르 코르뷔지에 전을 다녀와 느낀 것도 바로 ‘사유’의 힘이다. 사람은 삶을 사유의 종합으로서 살아가고, 죽어서도 하나의 사유로서 남아야 한다. 그 사유라는 것은 결국 남들과 나만의 것(나만의 스타일)이어야 의미가 있다. 그것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특별히 가치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문제가 광범위하고 그 해결방안이 획기적인 나머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게 된다면 그 사유는 시대를 가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유의 힘. 이세이 미야케는 해답을 제약과 전통에서 찾았다. 다만 시대적 과대를 푸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제 블로그의 글은 ‘생각을 자극하고 기록하기 위해’ 작성 되었습니다. 글의 주제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 께서 보신다면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한 지적과 의견 제시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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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전에 다녀와서: ‘천재는 한 순간도 천재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운전 면허 갱신이 늦어 면허 취소를 하루 앞두고 나서야 드디어 오후 반차를 썼다.
기회가 닿기 전에 끝나 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르 코르뷔지에 전을 덕분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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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재는 한 순간도 천재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르 코르뷔지에는 가업을 이어 시계공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17세 쯤, 숲을 그리라는 과제에서 그는 있는 그대로의 숲이 아닌, 숲 안에 숨어있는 도형감과 패턴을 발견하여 그림으로 그려낸다. 교장 선생님은 그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그가 건축가가 될 것을 권유한다. 천재성은 이렇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신 만의 시각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르 코르뷔지에는 평생 그림을 그린다. 스스로를 ‘오전은 화가 오후에는 건축가’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내 건축에 있어 어떤 장점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나의 비밀스러운 노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과 건축을 잘 모르는 내가 둘의 연관성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변할 때, 그 시기 그의 건축도 함께 변한다는 것을,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리기 시작하면 관찰이 시작되고 그제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상을 내 손으로 그려본다는 것은, 누구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고 분석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 작업을 매일 했다.

그는 동양의 건축물, 정물, 여인, 조개껍데기, 게껍질 등을 그리며 자연과 인간의 과거 속에 숨어 있는 미학을 분석하고, 그것을 그림과 함께 메모로 쌓아간다. 그는 ‘아직도 머릿속에 100년분의 계획’이 있다고 한다거나, 어떤 건축 작업을 몇 분만에, 며칠 만에 해버렸다는 것은 아마도 그 천재적인 시각과 연습과 연구의 반복이 그의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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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위에 메모를 남겼다

천재는 천재성을 발휘 할 때만 천재가 아니다. 매일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천재다. 시각과 노련함을 키워가는 매일의 노력도 천재다. 그것이 작품을 통해 들어날 때가 되서야 우리가 알아 볼 수 있을 뿐.

그렇다면, 이제 나를 돌아보자. 그가 천재성을 그림을 통해 키워갔고, 그 결과물이 건축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매일 해야할까? 이 고민에 빠져 몇 십분을 해맸다. 문제는 ‘내가 이뤄내고자 하는 그 결과물이 무엇인가?’라는 고민부터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멋진 기업과 조직을 일생을 통해 이뤄내려면 무엇을 매일 해야 할까? 멋진 기업과 조직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 그 지점에 서있다. 하지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문제와 떠오르는 솔루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들, 거기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굳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다.

2. 사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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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건축은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사유는 남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사유는 왜 중요할까? 왜 남게 될까? 왜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까지 선정했고, 그는 왜 현대 건축의 아버지가 됐을까? 그것은 그의 건축적 사고가 ‘과거’의 건축은 풀지 못했던 ‘현대’의 주거 문제를 너무나 잘 해결해낸 나머지, 현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고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부족해진 주택을 빨리 지어 공급할 수 있는 ‘돔이노’방식을 고안해 낸다거나, 오늘날 아파트의 전신을 만들 면서도, 그전에는 사람들이 고민해 보지 못한,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라는 ‘모듈러’라는 개념을 도입해 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 당대의 문제를 얼마나 현재의 접근방식과 기술적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 같다.

3. 안도다다오와 르 코르뷔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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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문외한인 나 조차 알고 있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권투 선수였고, 대단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하여’를 읽고 독학을 통해 건축에 입문한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못했다. 안도 다다오가 그를 우상으로 삼은 것은 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 뿐만 아니라, 닮아 있는 삶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건축처럼 공학과 예술 사이에 있는 어려운 분야에서 어떻게 이렇게 독학으로 성공하는 이들이 나오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아마도 그것은 잡다한 학문적 지식 보다도 아름다움과 인간 삶의 본질에 다가서야 하는 일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 잡지를 정기구독 하기 보다 자연 속은 진리를 탐험하고 발견하라고 하는 얘기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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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르 코르뷔지에와 피카소, 아인슈타인

르 코르뷔지에가 피카소와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들과 교류하면서 위안과 영감을 받는 부분이 전시에 나온다. 왜 일까. 본질에 다가가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경지에 이른 사람들 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동질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전시다. 2시 30분에 들어갔는데 차에 타니 6시 였다. 3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모르겠다. 기분 좋은 찜찜함이 많이 남았던 전시다. 그런 책, 영화, 전시, 혹은 사건
이 있다. 왠지 모르게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일종의 자극이 되는 것들. 전시장에서 나서 집에 도착하기 까지, 퇴근 길 교통 체증에 막혀 한 시간 삼십 분을 보내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전시회도 충분히 보고, 생각도 충분히 하고. 혼자 보는 전시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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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글 정리하고 집에가려고 보니, 도록도 매력적임

 

‘지속가능성’에 대한 나의 진정성을 고민하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후원과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구독

지속가능성 혹은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얘기하며 산 게 벌써 6년이 됐다.

그 시작은 군생활이었다. 군 생활 2년 동안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했고, 2년 간 정리한 키워드가 ‘가치, 개척, 열정’이었다.

그 ‘가치’에 해당하는 게 친환경 혹은 지속가능성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게 친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사실 그 당시엔 몰랐다.)

전역하고 한 달이 지나고서야 세 키워드의 교차점을 찾았다. 그게 신재생에너지였다. 그 이후로 만 6년이 흘렀고, 신재생에너지는 내 꿈이자 (내가 꿈꾸던 대로) 직업이 됐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냉정히 묻는다.
“나는 얼마나 지속가능석이나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대해 알고 있고, 고민하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가?”

이 가치에 대해 더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사상으로서의 그 개념들에 더 깊이 다가가고, 삶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그 공부와 실천의 방법론을 따지자면’사람’을 찾고 싶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그 길을 대학생으로서 함께 이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속가능성과 친환경 역시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닮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 환경단체 후원하기와 잡지 구독하기

첫째. 환경단체 후원하기
가장 먼저 찾은 단체는 (환경단체가 아닌)정치정당 녹색당이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친환경에 더 방점을 두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 중에 녹색당원 분들이 많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고려한 단체가 녹색당이었다. 녹색당 사람들은 다 좋았는데 홈페이지에 걸린 정책공약에서 막혔다. 나는 아직까지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순히 친환경을 넘어 경제 체제까지 고민하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녹색당 가입은 그렇게 포기했다.

두 번째로 찾은 단체는 환경운동연합이었다.
활동영역도 좋고, 무엇보다 지역별로 후원자들의 모임이 잘 결성 돼 있어서 좋아보였다. 사람을 찾아 배우려고 하는 나의 방향과 잘 맞을 것 같았다. 결제창에서 ‘결제’버튼 누르기만 남겨놓았을 때 쯤, 환경단체가 여기 뿐인가? 다른 곳은 없을까? 싶을 때 떠오른 단체가 ‘그린피스’였다

그렇게 그린피스(Greenpeace)를 세번째로 찾았다, 결론적으로 이 단체를 지원하게 됐다.
우선 그린피스는 국제적인 단체다. 나는 언제나 ‘글로벌’이라는 방향성을 고려해왔다. 회사도 글로벌이라는 가치 반영하고 싶었고, 그래서 종합상사에 관심을 갖고 결국 일하게 됐다.
국제적 환경 단체라면 세계적인 스케일에서 여러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 활동가나 후원자들과도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원의 결정적인 이유는 그린피스의 ‘순환경제’ 혹은 ‘자원순환’ 캠페인이었다. 요즘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분야다. 조만간에 포스팅을 따로 하겠지만,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여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그 제품이 어떻게 폐기 되어야 하는지, 실제 어떻게 폐기 되는 지 등에 대해서는 정보를 접한 바가 없다.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더불어서 폐기까지도 우리가 신경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린피스는 작년에 문제된 갤럭시 노트7의 리콜 사태의 결과물인 리콜 제품 폐기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혔고, 결국 제품이 무분별하게 폐기되는 것을 막았다. 활동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 보고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 대목에서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 였다.

그리고 그린피스와는 좋은 추억이 있다. 2012년 교환학생 떄도 학교 캠퍼스에서 캠페이너를 만나 한달에 30달러 정도씩을 지원하게 된 적이 있다.
캠페이너는 내게 책자와 스티커 등 선물을 주고 마지막 선물을 줘야하니 왼쪽팔을 위로 오른쪽팔을 아래로 벌려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안았다. 이 지구를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그 포옹이 주는 따뜻함과 약간의 놀라움이 그린피스에 대한 호감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한국 그린피스의 단점은 후원자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페이스북 그룹이라도 없을까, 있으면 그곳에서 내가 지역 모임이라도 작게 제안해 보고 싶었지만, 없었다
의외로 주변에 그린피스를 후원하고 있는 분을 두 분이나 발견했지만, 그 분들도 돈만 내고 있었다. 돈 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결국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후원자들은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그린피스 측에 문의 하니, 마침 3월 1일에 캠페이너와 후원자들의 만남이 있어 가기로 했다. 조만간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진정성을 찾기 위한 두번째 활동은 잡지 구독이었다.
사실 이 분야에 어떤 잡지들이 있는 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다만, 군 시절 훈련소에서 E.F.슈마허의 를 퍽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있었는데, 아이폰 팟케스트 목록에서 동명의 팟케스트를 찾았다. 동명의 잡지가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팟케스트는 시즌 1에서 중단 됐지만, 나는 최신 것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다.

이 잡지 역시 SolarFollowers가 그렇듯,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야기이며, 그를 위해 가치와 사상을 파는 사람들이다. 이 잡지의 편집장(글모듬지기)는 이 잡지에 ‘세상을 바꾸자, 세상이 안바뀌면 우리라도 모여서 다르게 살아보자’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런 삶에 대한 의 저자 황대권님의 코멘트가 인상 깊었다. 세상에 변화를 꼭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으면 위험하다고, 나중에 허무해 질 수 있다고, 오히려 그저 그 삶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의 버전으로는 매일 흙을 만질 수 있는 삶을 누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매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나의 진정성 있는 삶도 그렇다. 세상을 꼭 바꾼다기 보다는, 내가 세상을 더 즐겁게 그리고 더 누리면서 사는 방법으로서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더 심도 있게 다가가고 싶다.

이 잡지와 단체들을 통해 배우게 될 ‘지속가능한’ 혹은 ‘생태적’ 삶의 개념과 사상 그리고 삶의 모습이 많겠지만, 나는 나를 중심에 놓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가식이다. 지속될 수도 없다.

대신 이 책을 통해 나를 더 발견해 가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예를 들면 이번에 읽은 ‘쓸모있다면’호의 주제는 ‘업싸이클링’이다. 업싸이클링의 개념과 그 기반이 되는 사상은 제품의 생애 전체를 살펴 우리의 소비가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줄이자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에 애정을 갖고 오래쓰고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살펴보니, 겨우내 입은 내 코트와 패딩, 지갑 모두 전역 직후 2011년 초에 샀던 제품들.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내 소비 습관과 이 개념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나의 이런 좋은면은 더 가꿀 수 있도록 해야 겠고, 반대로 구매를 더 신중하게, 그리고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더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

유홍준의 ‘안목’을 읽고 한국의 미를 엿보다

이 책은 발간된 지 한달이 채 안됐다. 17년 1월 31일에 발행 됐으니까.
나는 그때 마침 Magazine B의 무인양품(MUJI) 편을 읽고 있었다.

MUJI의 성공은 단순히 일본 잡화회사의 성공이 아니다. 일본의 정신, 일본의 미적 감각의 성공이다.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정신, 선(禪) 사상을 제품의 디자인과 기획을 통해 표현한다.
그 사상이 제품으로 구현되는 범위는 면봉에서부터 필기류, 음식, 가구, 가전제품, 심지어 집으로까지 확장 되고 있다. MUJI의 철학은 일본의 철학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래서 ‘일본을 느끼고 싶다면 첫번째로 도쿄를 가고, 두번 째로 그 곳의 MUJI 매장에 가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MUJI에 감탄하면서, 나는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미를 고민했다.
왜 우리 기업들은 ‘제일주의’나 ‘빨리빨리’ 정신 외에는 딱히 기업이 그 존재로서 구현하는 사상과 가치가 없단 말인가. 우리에게 우리만의 미의식이나 철학이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었을까.

그 고민이 마침 발간되는 이 책, 유홍준 선생님의 <안목> 에 닿았다.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나 사상의 부재가 아니라,
그것을 기업의 철학과 제품으로 승화시킨 기업의 부재 혹은 나의 무지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 민족이 추구한 그 미의식을 실감했고, 감동했다.

일본이 ‘절제’의 미라면, 한국은 ‘조화’의 미라고 한다. 한국 건축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 건물 하나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그 건물과 주변의 조화를 함께 보아야,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 궁궐은 왜 이토록 ‘초라’하냐며 아쉽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철없는 생각에 대한 해답도 이 책에서 얻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정신이 해답이었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는다.’ 궁궐이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조정의 존엄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 전시가 리움의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이라고 유홍준 선생은 소개한다. 올해 또 열리면 꼭 가봐야겠다.)

이런 ‘조화’를 어떻게 기업의 활동으로 구현할 것인가, 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냥 재밌다.

우리 문화의 그 깊이와 다양성에 정말 놀랐다.
이렇게도 크고 깊은 것이 이 세상에 존재했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심지어 없다고 생각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한동안 유홍준 선생이 안내하는 우리 멋의 세계를 떠돌아 다니게 될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세 벌써 그의 문장들을 노트에 받아 적고 있었고, 그의 생각이 내 삶 곳곳으로 퍼져 또 다른 생각의 생각을 낳았다.
나는 내 독서의 농도를 그 독서로 채워지는 내 노트의 기록으로 가늠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을 넘어 섰다. 기록의 많고 적음 보다는, 기록을 해 나가는 동안의 내 흥분감.
종이에 생각을 옮겨 적는 동안, 또 다른 생각은 이미 두서 걸음 앞서 가 버리는 그 몰입감.
이 독서는 아마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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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디자인 조차 아름답다. 조선의 백자 같은 느낌.

전하는 가게 ‘디앤디파트먼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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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사상’이 있는 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기만의 ‘사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들.
그들이 정의하는 좋은 제품이란 무엇이며, 그들은 그 사상을 어떻게 제품화 시키고, 그것을 기업화 하여 영속하는가?
나의 화두다.
D&Department는 ‘롱 라이프 디자인’제품과 그 사상을 파는 회사다. ‘롱 라이프 디자인’이란, 탄생한지 20년 이상 된 생활 용품을 의미한다. 제품 제작의 측면에서 그것은 내구성이 좋고 수리하기 용이하여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며, 소비의 차원에서 보자면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는 태도를 이야기 한다. 제품의 생산 방식과, 사람들이 소비 방식 모두에 어떤 지향점을 제시하는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D&D에게 판매란 제품의 기능, 견고함, 전통, 풍토, 수리, 의식, 산지에 대한 정보 등을 전하는 일이다.
D&D는 일본 각지에서 롱라이프 디자인 사상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발굴하여 정가에 판매하며,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간다.
이렇게 좋은 제품에 대한 정의가 뚜렷한 기업은, 그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로 하여금 ‘이 가게/회사에서라면 무엇을 사도 괜찮아’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제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D&D가 제시하는 기준은 6가지.
1) 알기: 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배경을 알고, 제작자의 생각과 태도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것(공장 방문 등을 한다)
2) 사용하기:6~12개월 정도 물건을 실제로 써본다. 사용 중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그것을 대하는 제작자의 태도까지 본다.
3) 인수하기: 한 번 판매했던 제품을 다시 구매해서 판매할 수 있을 것.
4) 수리하기: 망가져도 수리해서 쓸 수 있는 제품
5) 지속하기: 제작자가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제품
이 외에도 ‘전하는’회사가 되기 위해 3년 마다 활동을 정리하여 책으로 내는 것이나, 공부회를 열어 직원들과 고객이 D&D가 지향하는 가치와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점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전하는 가게는 오히려 외진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도 흥미로우면서도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런 가게는 애초에 돈 벌이가 안되니, 제2의 수입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조금 수긍하기 어려웠다. 물론 욕심을 내는 것과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상충하는 가치 같지만, 이 모델이 퍼지려면 돈벌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